종교 개혁의 의지가 타올랐던 1555년 독일 의회는 루터의 주장을 받아들여 아우크스부르크 화의(화해하려고 협의함)를 결의하게 돼요. 이로 인해 교황 중심의 가톨릭과 다른 루터 교가 생겼고 이 루터 교를 신교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이 화의에서 칼뱅의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게 됩니다. 이런 이유가 30년 전쟁의 발단이 되었어요.
아우크스부르크 화의는 잠시 동안 신교와 구교 간의 평화를 만들었지만 신교의 탄압, 칼뱅 파는 무시하고 루터파만 인정함으로써 30년 전쟁이 시작되었어요. 그 시작은 종교 전쟁이었지만 유럽의 각 국가들은 종교는 핑계이고 영토 확장의 야욕과 정지적인 의도가 들어간 전쟁은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커지게 됩니다. 예를 들면 구교였던 프랑스가 싫어했던 오스트리아와 전쟁을 위해 신교 편에 붙어서 전쟁을 했으니 할 말 다 했지요. 역시 전쟁은 누구의 편도 없는 듯합니다.
30년 전쟁으로 독일은 거의 황폐화되었으며 인구가 감소한 건 당연한 이야기이며 황제 권한 약화로 내부 분열이 심각했어요. 이에 독일은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을 체결하게 되고 이 긴 30년 전쟁의 종지부를 찍게 되지요. 베스트팔렌 조약은 강력했던 로마 교회의 힘을 무너뜨렸고 새로운 질서를 가져와요. 다시 말하면 황제와 교황의 권력 약화로 정치는 정치는 종교의 영향으로 벗어나게 되어 국가끼리의 경쟁으로 질서가 유지가 되었다는 말이거든요.
이처럼 세계사는 힘의 이동에 따라 영향을 받는 예가 많았는데 물론 전쟁과 조약에 따라서 달라진 거죠. 다시 생각해 봐도 참 어지럽고 힘든 역사인듯합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사는 것에 감사해야 할까요? 물론 지금도 전쟁은 발발하고 민족과 국가 간의 싸움은 여전합니다. 조약과 비슷한 휴전협정이 있고요. 우리 모두 평화로운 세상에 살았으면 좋겠네요.
위 사진은 울리히 아프라 교회 모습인데 정말 독특한 점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구교와 신교가 같이 붙어 있다는 것인데 크고 화려한 탑을 가진 건물은 구교인데 그 높이가 약 93미터나 돼요. 아래의 작고 검소한 탑은 신교를 나타냅니다. 이 두 건물은 아우크스부르크 화의를 기념하여지은 것이라고 합니다. 전쟁과 평화는 창과 방패 같은 느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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